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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권하는’ 팝핍현준, “백발의 노인이 돼도 춤 추고 싶다”

작성일 2022.08.10조회수 29작성자 와이콘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가…가…가볍게, 바…바…박자를, 박자를 타보도록 합시다. 여기 함께 나와, 모두 함께 나와, 춤을 춰봐, 날 따라해봐, 에브리바디 렛츠 팝핀(Everybody Let’s Poppin)”
이 비트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몸치’라도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비트가 흐르면, ‘플로어(floor)의 왕자’는 예의있게 팝핀(Poppin’ : 튕기는 듯한 안무의 스트리트 댄스)을 권한다. ‘조선의 힙(Hip)’으로 떠오른 검은 갓을 쓰고, 펄럭이는 검은 도포를 입고, ‘미래지향적 선글래스’까지 걸친 채 관절의 마디 마디를 움직인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엠넷)가 대한민국에 ‘댄서 열풍’을 불러오기 전 이미 이 사람이 있었다. 20세기에 등장, 댄서 ‘최초’로 아이돌 가수 못잖은 인기를 누린 1세대 스타 댄서다. 그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 ‘미래의 춤꾼’을 꿈꾸는 소년소녀들의 우상이었다. 댄서들의 경연을 쫓아다니던 팬들과 동료들로부터 이름까지 선물받았다. 그게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댄서이자 가수, 작가(회화)인 팝핀현준(42·본명 남현준)이다.

“데뷔한 지는 25년이 됐고, 춤을 춘 지는 30년이 됐어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어린 시절부터 해왔던 말들, 저의 소신들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더라고요.”

대한민국의 어떤 댄서도 자신의 이름 앞에 춤의 장르를 붙이진 않는다.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팝핀’만 입력해도 그의 이름은 가장 먼저 따라나온다. 독특한 이름은 그의 정체성이 됐다. ‘춤’ 하나로 세상을 찢어버린 팝핀현준에겐 어느덧 여유의 바이브가 묻어난다. 최근 새 싱글 ‘레츠 판핀’(Let’s Poppin’)을 통해 가수로 돌아온 그를 서울 용산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 1세대 스타 댄서의 ‘권무가’이자 춤의 세계…“우리, 팝핀 하자”
“사실 춤은 누구나 출 수 있어요. 몸으로 하는 언어 표현이기에 음악에 맞춰 움직이면 춤이 되는 거예요. 저를 보며, 춤 추는 팝핀현준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팝핀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인생을 팝핀해서 즐겁게 살아보자는 의미를 담은 노래예요. ”

1998년 영턱스클럽으로 데뷔한 이후 댄서로 가수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꾸준히 음반 작업을 해왔다. 이번 ‘레츠 팝핀’은 2020년 그의 아내인 소리꾼 박애리와 함께 선보인 ‘평창 아리랑’ 이후 2년 만의 작업이다. 솔로로는 2019년 ‘백 투 더 올드 스쿨’ 이후 3년 만이다.

곡의 구성이 독특하다. 디제이 렉스가 비트를 만들고, 팝핀현준과 양동근이 각각 1, 2절의 가사를 썼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이야기가 ‘레츠 팝핀’ 안에 공존한다.

“힙합의 첫 번째 정신은 메시지잖아요. (양)동근이와 함께 작업하는 곡인 만큼 서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어요. 처음엔 두 메시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담는 것 역시 힙합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한 거죠.”

탄생한 가사의 1절은 “다함께 팝핀하며 즐겁게 살아보자”는 내용이고, 2절은 양동근에게 인상깊게 다가온 압존법(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아 그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문법)에 대한 이야기다. 팝핀현준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존버’하려면 알아둬야 하는 이야기라며 그 안에 동근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고 말했다. 앞뒤의 메시지가 다른 만큼 비트도 완전히 달라진다. “1절엔 둥다닥 하면서 밀어주는 비트라면, 2절은 둥둥다닥 하듯이 달리는 비트예요. 전 루즈하게 랩을 하는 반면, 동근이는 공격적으로 메시지를 던지죠. 이 비트는 어쩌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알던 팝핀현준을 만날 수 있는 비트예요. 들을 수 있는 노래이면서 춤 출 수 있는 정통 팝핀 비트예요.”


이 노래는 일종의 ‘춤 고수’가 들려주는 ‘권무가’다. 그러면서도 이 안엔 팝핀현준이 걸어온 지난 세계와 ‘춤에 대한 철학’이 담겼다. 비트 하나 하나에 몸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 춤을 추던 시절부터 움직임에 여유를 담아낸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동안 냈던 앨범과 음원을 통해 내 음악세계를 꾸준히 연결하고 있다”고 했다.

2007년 발매한 정규앨범의 타이틀곡 ‘돈트 스톱(Don’t stop)’에선 가난을 이겨내며 춤을 추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제가 춤을 춘 것은 나만의 춤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고, 세상에 없는 춤을 추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가수는 자기가 부른 노래대로 된다고 하잖아요. 춤에 빠져 힘든 어린 날을 돌아보며, ‘춤으로 갈 수 있는 곳, 그 곳까지 간다’는 가사를 썼어요. ‘이 음악을 멈추지 말라고, 힘든 인생 노래할 수 있고, 춤에 빠져 행복하고,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요. 지금 돌아보면 전 정말 그렇게 꿈을 이루게 됐어요.”

팝핀현준이 가지고 있는 위치는 독특하다. 명실상부 ‘댄서들의 댄서’이면서도 그는 ‘대중적인 댄서’다. 자신이 추는 춤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모든 음악에 팝핀을 접목한다. 심지어 동요에 춤을 추기도 한다.

“사실 전문적으로 추는 중요한 팝핀 스타일과 대중적으로 알려진 팝핀은 좀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전 대중을 만나는 대중 아티스트라면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만들고, 대중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할 수 있을 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물론 아직 저도 완전체는 아니지만요.”


■ 멈추지 않는 배움과 도전…댄서, 가수, 작가로의 영역 확장

일찌감치 주목받은 춤꾼이면서도, 지난 30년간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엔 현대무용을 배우며 새로운 춤의 세계를 만났다. “매너리즘을 벗고, 다른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시도”였다. 팝핀현준은 당시를 떠올리며 “다른 장르의 사람들을 만난 것은 전통성이 주는 강력한 시간의 힘을 배운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현대무용을 처음 만났을 땐 무용수들이 춤을 추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듣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희는 정확하게 음악을 듣고 추는데, 그들은 행위적으로 표현을 하니까요. 그래서 물어보니, ‘음악을 듣는 건 너무나 쉽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음악을 들으려 이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몸으로서 전달하고,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려 춤을 추는 거라고요. 그 말이 깊이 남더라고요.”

현대무용과의 만남은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 계기가 됐고, 자신의 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힘을 뺀 몸의 언어”의 중요성도 알게 됐다. 춤을 넘어 새로운 예술 세계를 확장하게 된 것도 이 만남을 통해서다.

“그동안 춤을 추기 위해 그토록 많은 연습을 했는데, 그것이 과연 발전된 연습이었을까, 그저 쳇바퀴 굴리듯 하는 연습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됐어요. 춤을 보는 세계관이 넓어지고, 세계관이 확장되니 미술도 알게 됐고요.”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던 그는 일찌감치 댄서의 길을 걸었지만, 2007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중국에 1년간 머물며 그린 그림만 해도 무려 200장. 한국에 돌아올 땐 배로 실어 보낼 정도의 양이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팝핀현준의 색감과 구성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2018년 광주 ‘나눔의집’에서 요청해 그린 할머니 열 명의 초상화, 2019년 태국 파타야 패러디 아트 뮤지엄 벽에 그린 그래피티, 여성조선에 6개월간 연재한 명화 패러디 등이 이미 주목받아 ‘작품을 파는 작가’가 됐다. 최근엔 ‘우주전쟁’이라는 그림으로 갤러리 스페이스사직에서 스무 명의 팝아트 작가들과 공동 전시를 했다. 그림에도 춤은 빠지지 않는다. 외계인이 침공한 지구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채로운 색의 언어로 표현됐다.

팝핀현준의 춤과 음악, 미술엔 그의 정체성이 묻어난다. “나의 춤을 추고 싶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갔고, “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음악”을 내놓는다.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전공자들은 쓰지 않는 구도와 색감”을 화면에 담는다. 춤꾼 팝핀현준의 생동하는 에너지가 그림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제 지문을 찍었을 때, 이건 팝핍현준의 지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자로 가려 놓고 춤을 춘다고, 누군지 모르면 안 되는 거죠. 마이클 잭슨이나 찰리 채플린, 우린 그들의 그림자와 실루엣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게 정말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배웠어요.”

그의 모든 활동에는 그 자신, 팝핀현준이 담긴다. 춤, 음악, 그림에 이르기까지 그가 잃지 않으려는 것은 ‘진짜’의 가치와 ‘진정성’이다. 그 안엔 소년 팝핀현준이 살아있다.

“요즘처럼 넘쳐 나는 정보와 경쟁의 시대에 휘청이지 않고 나를 지키려면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것을 훔쳐온 사람, 베껴온 사람이라면 그건 나일 수가 없어요. 내가 만든 것, 즉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정체성이 생기고, 그것으로 히스토리가 만들어지고, 헤리티지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 모든 걸 갖추기 위해선 결국 진정성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 동심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춤부터 그림까지, 여러 캐릭터를 가진 만큼 팝핀현준의 삶에는 쉼이 없다. 꾸준히 새로움을 시도하고 만들어간다.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미술과 춤을 접목한 공연 콘텐츠도 기획 중이고, 내년쯤엔 아내 박애리와 협업한 음반도 구상 중이다. 다양한 활동 중에도 팝핀현준에게 일순위는 늘 ‘춤’이다.

“전 언제나 댄서예요. 30년을 췄기에 세월의 흐름과 몸의 변화, 노화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추고 싶어요. 체력이 되는 한, 할 수 있을 때까진 무대에 서고 싶어요. 주름진 얼굴, 백발의 노인이 된 뒤에도 드럼 비트에 맞춰 제 삶을 이야기하는 댄서가 되는 것이 바람이에요.”
고승희 shee@heraldcorp.com